[나이키] 우리가 좋아하는 유명 브랜드 역사
나이키! NIKE
오레곤 대학의 트랙 선수인 필립 햄슨 "필" 나이트(Philip Hampson "Phil" Knight)와 그의 코치 빌 보워먼(Bill Bowerman)이 1964년에 만든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가 나이키의 전신이다. 블루 리본 스포츠는 일본의 스포츠화 메이커인 오니츠카 타이거의 제품을 유통하는 사업으로 돈을 번다. 일본 회사와 계약이 끝나갈 무렵 그들은 자신들만의 제품을 생산하기로 결심하고 새로운 브랜드인 나이키를 출시한다. 나이키의 브랜드명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이름도 스포츠 브랜드로서 매우 적절했지만, 그 디자인 또한스포츠 브랜드다웠다.
필 나이트는 당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던 대학생 캐롤린 데이비슨(Carolyn Davidson)에게 나이키의 로고 디자인을 의뢰한다. 필 나이트는 데이비슨의 시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마감이 임박하여 할 수 없이 스우시(swoosh) 마크를 선택한다. 이것은 승리의 여신의 날개를 형상화한 것이다. 당시 캐롤린 데이비슨이 이 일로 받은 돈이 불과 35달러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데이비슨은 그 이후로도 나이키를 위한 디자인 일을 한다. 첫눈에 필 나이트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 로고는 나이키 운동화의 옆을 장식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브랜드의 로고가 되었으며, 나이키는 오늘날까지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로 사랑받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나이키, 1971 [Nike, 1971] - 캐롤린 데이비슨 (20세기 디자인 아이콘 : 로고, 김신, 월간 <디자인>)
나이키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클래식한 스우시 이미지가 떠오를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 중 하나인 스우시는 퍼포먼스, 원칙, 혁신, 불규칙, 창의성 그리고 변화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우시가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유명 디자이너들의 인력과 시간이 투입됐을 거라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죠.
브랜드의 공동 창립자인 필 나이트가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 작업은 포틀랜드 주립대학교의 그래픽 디자인과 학생인 캐롤린 데이비슨에게 맡겨졌습니다. 생산 기한에 맞추기 위해 작업 시간은 짧았고 피드백은 빨랐으며 큰 노력을 들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오리건의 별 볼일 없는 작은 회의실에서 단순한 동그라미 같기도 하고 구멍 같기도 한 모양을 포함해 다양한 버전의 스우시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형태의 스우시는 앞서 네 가지 옵션이 거절된 후 마지못한 분위기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당시 나이트가 망설이며 보였던 반응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점점 익숙해지겠지요."
필 나이트
그리고 스우시 마크는 (당시에는 '스트라이프'로 불렀고 캐롤린은 여전히 그렇게 부릅니다.) 멕시코의 과달라하라로 보내지면서 제조되기 시작했습니다. 멕시코로 보내야 하는 일정이 워낙 촉박했기 때문에, 팀은 회의 후 정리할 새도 없이 손으로 그린 스우시 마크를 그대로 보내 신발 제조 공정에 투입했습니다.
그 후는 이제 우리 모두가 아는 이야기입니다. 스우시는 문화적 상징이 되었고 데이비슨이 몇 주 동안 휴지에 그렸던 디자인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굉장한 가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나이키 공식 홈페이지 발췌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