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브랜드

[록시땅] 우리가 좋아하는 유명 브랜드 역사

by 유에스비이 2022. 12. 23.
728x90
반응형



록시땅
L’OCCITANE


올리비에 보쏭이 1976년에 설립한 프랑스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로 스킨케어, 바디&배스케어, 헤어케어, 남성 제품 등을 제조ㆍ판매

1.록시땅의 정의 및 기원

록시땅(L’OCCITANE)은 1976년에 설립된 프랑스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로, 프랑스의 옛 지명인 ‘옥시따니아(Occitania)’에서 유래하여 ‘록시땅(옥시따니아에서 온 여자)’으로 지어졌다. 예로부터 옥시따니아는 일조량이 많고 토양이 비옥한 지역으로 중세 시대에는 음유서정 시인들로부터 가장 사랑 받던 지역이었다. 올리비에 보쏭(Olivier Baussan)은 옥시따니아 지역의 눈부신 태양과 값진 토양,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다양한 산물들을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록시땅을 설립했다고 말한 바 있다

2.록시땅의 탄생 및 설립자
록시땅 설립자인 올리비에 보쏭(1953~ )

올리비에 보쏭은 1953년에 프랑스 프로방스(Provence) 지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프로방스 지역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일조량이 많아 로즈베리(Roseberry), 라벤더(Lavender) 등 다양한 작물들이 잘 자라나는 곳으로 이러한 작물들을 활용한 산업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올리비에 보쏭은 이 지역의 자연과 작물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학 시절에 낡은 증류기를 구입하여 천연 로즈메리(Rosemary)를 에센셜 오일로 증류해 프로방스의 크고 작은 마을 장터에서 판매했다.

올리비에 보쏭은 1976년 마르세유(Marseille) 지역에서 쓰러져 가던 비누공장을 발견하고, 공장장을 설득해 이 공장을 인수했다고 한다. 당시 마르세유 지역에서는 600년 동안 전통적인 방식으로 비누를 제조해 오고 있었다. 이 지역의 비누는 천연식물성 유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피부 자극이 적고 세안 후에는 건조함이 남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올리비에 보쏭이 비누공장을 인수할 무렵에 마르세유 지역에 대량 생산된 값싼 비누들이 들어오면서 마르세유 지역상권 전체가 쇠퇴기를 맞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올리비에 보쏭은 비누공장을 인수하면서 마르세유 지역의 전통적인 비누 제조기술을 전수받았고, 그 해 록시땅 비누 공장(L’OCCITANE SAVONNERIE, ‘SAVONNERIE’는 비누공장을 의미함)을 설립해 비누 제품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1981년 올리비에 보쏭은 직원 25명과 함께 프로방스 복스(Volx) 지역에 록시땅의 첫 번째 매장을 열고, 천연 에센셜 오일이 첨가된 비누들을 판매했다. 이것이 ‘록시땅’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3.록시땅의 역사

1) 회사 설립 ~ 시어버터 출시(1976~1994)

회사를 설립한 후, 올리비에 보쏭은 새로운 비누 재료와 전통 제조기법을 찾아 전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1980년 올리비에 보쏭은 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Burkina Faso)에서 우연히 시어버터(Shea Butter)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시어버터는 시어 열매를 빻아 만든 것으로 부르키나 파소의 여성들은 이것을 보습제로 사용하고 있었다. 올리비에 보쏭은 프로방스로 돌아오기 전에 시어버터를 대량으로 주문했고, 1982년에는 시어버터가 함유된 비누를 시장에 출시했다.

록시땅은 1980년대 후반부터 부르키나 파소의 시어버터 생산 여성들과 정식으로 공정무역(Fair Trade)을 체결하고 시어버터가 함유된 보습제를 본격적으로 출시 판매했다. 그 후 시어버터는 다양한 록시땅 제품의 주요 원료로 활용되고 있다.

1986년 록시땅은 마르세유 지역에 생산라인을 정비하여 제품의 생산량을 늘렸고, 1992년에 프랑스 파리의 루 바뱅(Rue Vavin)에도 매장을 열었다.

2) 라이놀트 가이거의 영입 ~ 글로벌화(1994~2013)

1990년까지 올리비에 보쏭은 록시땅을 성장시키기 위해 벤처캐피털(Venture Capital)의 지원을 받았다. 당시 록시땅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는데, 이때 올리비에 보쏭은 회사 경영을 담당할 전문 경영인을 영입할 것을 결심했다.

1992년 올리비에 보쏭은 친구의 소개로 대규모 패키지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라이놀트 가이거(Reinold Geiger)를 만났다. 당시 라이놀트 가이거는 록시땅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여 록시땅에 투자했고 1994년에 록시땅 경영에 직접 합류했다. 1996년 라이놀트 가이거는 정식으로 록시땅의 CEO가 되었다.

라이놀트 가이거는 록시땅이 프로방스 지역의 전통적인 비누 제조법을 따라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라는 점을 부각시켜 프랑스에서 록시땅 브랜드 인지도를 넓혀 나가는데 주력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해외시장 진출에 나선 록시땅은 1995년 홍콩을 시작으로 1996년에 뉴욕, 1997년에 일본에도 매장을 열었다. 1990년대 후반까지 록시땅은 전 세계 40여 개국에 추가로 브랜드 매장을 열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고, 국내에는 2007년 신사동 가로수길에 1호점을 열었다.

2000년대부터 록시땅은 브랜드 라인을 확장하기 시작해 주름개선 특허 화장품인 이모르뗄 스킨 케어(Immortelle Skincare)와 슬리밍(Slimming)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아몬드(Almond) 제품 라인을 잇달아 출시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체리 블라썸(Cherry Blossom)과 이모르뗄 디바인(Immortelle Divine), 피브완(Pivoine), 그리고 남성 화장품 라인 베르동(Verdon)을 추가로 출시했다. 록시땅은 2011년에 글로벌 시각장애인 NGO 그룹인 오르비스(ORBIS)와 파트너십을 맺었고, 수분 스킨 케어 제품 라인 엔젤리카(Angelique)를 출시하며 전 세계에 2천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글로벌 브랜드가 되었다.

[네이버 세계 브랜드 백과 내용 발췌]

728x90
반응형

댓글